살며, 연구하며, 교육하며 (Professor's Essay)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이건수l 2011-04-10l 조회수 4061

나름대로 천진난만하게 대학생활을 하는 학생들도 일단 졸업을 앞두면 자신의 진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배우고 깨달은 경험과 주위의 조언을 바탕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나도 매년 몇 차례는 자신의 진로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는 학생들과 상담하게 된다. 본인이 의과대학을 갈까 약학대학을 갈까 하는 질문은 내가 생명과학부 교수이기 때문에 지래 짐작으로 내가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묻지 않는다. 찾아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공통적인 질문은 과학자로서의 진로에 관한 질문이다. , 연구를 하면서 사는 삶이 만족스러울지, 또한 과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는 능력을 본인이 가지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들이다.

   

   아마 자연과학대학을 입학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과학자로서의 인생을 한 번쯤은 꿈꿨을 것이다. 실제로 연구는 매력적인 작업이다. 자연현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이로부터 생명의 원리를 생각하여 유추하며, 그 생각을 실험으로 확인해보는 연구는 이를 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희열을 잘 모른다. 또한 본인의 연구가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어서 과학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더욱 그 재미는 배가된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과학자의 길을 걷는데 주저한다. 먼저 과학자가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 끝에 성공적인 과학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또한 경제적인 보장도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이는 의과대학생들과 대조가 되는데, 의대생들도 상당히 오랜 기간의 고된 수련이 필요하지만, 일단 수련이 끝나면 대부분 의사가 되며,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한 평생을 사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복된 일인가. 만일 본인이 연구를 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면 과학자로서 살아야 하고, 병을 고치는 봉사를 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면 의사가 되어야 한다. 물론 노래 부르면서 사는 것이 좋다면 굶어 죽어도 가수가 되는 것이 옳다. 꼭 직업으로만 국한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만일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면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도록 해야 하고, 이보다는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면 결혼이 희생될 가능성도 배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작 문제의 본질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정확히 진단해내는 작업은 대학생 동안에 마쳐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개인에 따라서는 졸업 후에도 아직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과학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연구하기를 좋아해야 한다. 탐구하는 것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도전하기를 즐거워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과학자로서의 삶을 동경하는 마음이 이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보다 커야 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편안한 삶을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겠으나, 삶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일단 됐다. (과학자의 수입이 적다고는 하나, 월급 받아 부자 될 수 없다는 것이지, 먹고 살 만큼의 수입도 되지 않는 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면 스스로가 과학자 되기를 원하는지 어느 정도 자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험실에 소속되어 연구를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는 석사과정을 밟아볼 것을 권한다. 석사과정 2년 동안 연구 주제를 놓고 씨름하고 고민해보면 스스로가 과학자 체질인지 아닌지를 거의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 체질인지를 알기 위하여 2년씩이나 투자할 수가 있을까에 의구심을 가진 학생이 대부분일 것이다. 젊었을 때 2년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하지만 평생의 진로를 생각했을 때 2년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또한 대학원 2년을 마치고 과학자가 아닌 다른 길로 간다고 해도 대학원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은 무엇을 하든지 충분히 활용되고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생은 큰 실험이고, 석사과정 동안에는 생물학적인 질문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의 질문을 놓고 씨름해갈 것이다. , 인생의 원리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만일 2년간의 대학원을 투자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학부 다니면서 방학을 이용한 실험실 체험을 해보기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누구든지 각자 하나의 인생을 산다. 그 인생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엮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2004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