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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프리온이라는 패러다임

이일하l 2011-07-09l 조회수 2425

광우병=프리온이라는 패러다임                                        Grade E

우리 한국인들은 무엇이든 열정적이다. 달리 말하면 쉽게 달구어지고 몰입한다. 덕분에 엉뚱하게도 우리 국민들의 의학적 지식은 광우병과 줄기세포에 관한한 거의 전문가 수준이 되어 있다. 황우석 사태로 전 국민이 줄기세포 전문가가 되더니 미국과의 FTA 쇠고기 협상 와중에 전 국민이 광우병 전문가가 되었다. 알려진대로 광우병의 원인은 끓여도 파괴되지 않는 프리온이라는 변성 단백질 때문이다. 1982년 스탠포드 대학의 스탠리 프루시너 교수가 Science 지를 통해 양의 뇌질환 중 하나인 스크래피가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에 의해 일어난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발표하면서 제기된 이래 소의 광우병이나 사람의 크로이즈펠트야콥병(CJD) 등이 프리온 단백질에 의한 질병이라 공인되게 된다. 그 과학적 공인의 결정판이 1997년 프루시너 교수에게 주어진 노벨생리의학상이다. 이 글에서는 광우병=프리온 이라는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무모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어 보고자 한다.

광우병의 원인인자로서 프리온의 발견은 그 자체가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엄청난 변혁이다. 그 얘기부터 해보자. 일반적으로 질병이란 병원균 혹은 병원체가 우리 인간의 몸에 침입해 들어와 증식, 혹은 복제가 폭발적으로 진행되어 일어나는 것이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질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병원체의 존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론의 시작은 아마도 'germ theory'일 것이다. 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 이란 감염성이 있는 단백질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단백질이 증식, 즉 복제가 되어 질병을 일으킨다는 말인데 핵산이 복제를 위한 물질이라는 생물학의 가장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위협하는 아이디어인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1982년 Science 지에 발표된 이래 15년 동안 이를 반박하는 반증자료가 발견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입증하는 자료들이 계속 발표되면서 확고부동한 사실로 자리매김되게 된다. 프리온이 뇌질환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프리온이 변성되어 잘못된 특정 3차구조를 가지게 되면 이 변성단백질이 정상적인 구조의 프리온과 결합하여 순차적으로 이들을 모두 변성된 3차구조로 전환시킨다는 것이다. 그 결과 변성 프리온 단백질들 간에 요철과 같은 결합구조가 생기면서 이들이 뒤엉켜 딱딱한 구조물을 만들어내게 되고 이것이 뇌조직을 파괴시켜 해면조직과 같은 뇌구조의 변형을 일으키는 것이 광우병 뇌질환의 원인이다. 정리하면 광우병, 스크래피 등의 증식은 복제 능력이 있는 핵산 때문 이 아니라 도미노처럼 확산되어 가는 단백질의 변성때문인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변성은 종간의 경계도 넘어서 확산된다. 이 때문에 스크래피에 걸린 양고기를 먹은 소가 광우병에 걸리고,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먹은 인간이 vCJD(변형 크로이즈펠트야콥병)에 걸리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지지해주는 몇 가지 확고부동해 보이는 근거들을 들어보면 첫째, 병원체가 끓여도 파괴되지 않는데 바이러스는 이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변성 프리온은 끓여도 파괴되지 않는다. 변성된 3차구조가 매우 단단하기 때문이다. 둘째, 프리온 단백질의 유전자를 클로닝했더니 놀랍게도 정상적인 동물의 유전자중 하나였다. 뇌질환에 걸린 동물에게서만 나타나는 유전자가 아니라 정상적인 동물에게도 존재하는 그 기능을 알 수없는 유전자이다. 실제 뇌질환을 일으키는 것은 유전자 이상이 아니라 단백질의 변성이 원인임을 시사한다. 셋째, 재조합 DNA 기술로 합성한 프리온을 지질 분자로 변성시켜 쥐에 주사하면 쥐에 뇌질환이 발병하게 된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넷째, 정상 프리온을 넉아웃시킨 생쥐는 감염된 조직에 의해 발병되지 않는다. 변성단백질로 전환될 프리온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변성단백질에 의한 질병이 흔치않게 일어난다는 사실이 최근 하나씩 밝혀지게 된다. 치매, 헌팅턴병, 파킨슨씨병 등이 그런 예이다. 말하자면 단백질 변성에 의한 질병의 증폭이 광우병에서만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꽤 일반적인 현상임을 보여준다.

이상의 이야기를 들으면 프리온 이론은 이제 완전히 끝난 이야기 같은데 여전히 이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과학자들이 꽤나 존재하나 보다(1). 지난 30년 동안 프리온 이론을 반대해온 과학자가 예일대의 Laura Manuelidis 교수이다. 그녀를 비롯한 회의론자들은 광우병의 원인인자는 프리온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확인 바이러스이며 프리온은 뇌질환 결과 만들어진 부산물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녀는 뇌질환에 걸린 환자의 뇌에서 프리온과 함께 바이러스로 보이는 입자를 보여주는 전자현미경 사진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그녀가 프리온 이론을 끝까지 부정하는 이유는 그녀의 연구배경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녀는 예일대 메디컬 스쿨에 대학원생으로 입학하던 때부터 인간의 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의 지도교수이자 남편이 된 Elias Manuelidis 교수와 함께 인간 광우병이라 불리는 TSE (Transmissible Spongiform Encephalopathy)의 원인 바이러스를 30년 동안 찾아왔기 때문이다. 30년간의 집념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한 바이러스가 허깨비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복제와 증식에는 반드시 핵산을 가진 entity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오랜 패러다임을 든든한 뒷배경으로 삼았을 것이다. 이미 종신재직권(tenure)을 확보한 그녀의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없기에 학계의 차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확인 바이러스의 존재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실험자료의 확보에 마지막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커리어에 큰 영향이 없을 학부생들을 조수로 써서 끝까지 가볼 심산인 것이다. 내 의견을 묻는다면 프리온 가설이 이제 와서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낡은 패러다임에 집착하는 노인네의 고집불통으로 보인다.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 조차도 DNA가 유전물질임을 확증하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던 위스콘신대학의 백발성성한 노교수의 완고함이 오버랩되지만 Manuelidis 교수에게는 연민을 느낀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또 한번 뒤집어보고 싶어 하는 과학자의 열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Reference

The prion heretic. Science (2011) Vol 332; 1024-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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