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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되는 방법을 알려주마!

이일하l 2011-06-04l 조회수 1482

교수되는 방법을 알려주마!

요즘 장안의 화제인 TV 프로그램 하나가 교수들 사이에서도 대단한 인기다. ‘나는 가수다’, 노래 하나로 프로페셔널이 된 가수들을 노래 경합을 시키는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 예능 프로그램이다. 사오십대 아저씨들을 일요일 밤 TV 앞에 묶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이니 그 인기가 대단한가 보다. 교수들도 이 프로그램을 패러디하여 ‘나는 교수다’라고 외친다고 한다. 지난번 생명과학부 채집여행때 허원기교수가 노래를 부르기 전 ‘나는 교수다’라고 외치며 학생들의 환호성을 끌어내더니 최근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으로 이름을 더 높인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도 서울대 발전기금 행사에서 ‘나는 교수다’라고 외치며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들의 외침은 패러디이긴 하지만 그 안에 직업으로서의 만족감과 행복감이 묻어난다. 나 또한 교수라는 직업에 대단한 만족감을 느끼며 일상적인 행복을 강의와 연구 속에서 발견한다. 교수가 행복한 이유를 열가지쯤 정리해서 다음 기회에 소개할까 한다. 우선 그토록 행복한, 만족감이 높은 직업을 버리고 의대를 진학하겠다는 우리 생명과학부 학생들에게 교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 지, 교수되는 방법을 알려주려 한다. 무슨 대단한 비밀을 들려 주려는건 아니고 교수되는게 대단히 어려울거라 지레짐작하고 도전을 포기해버리는 우리 학생들에게 이게 얼마나 손쉬운 일인지를 알려주려는 것이다.

우선 교수가 되려면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한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 박사학위를 필요로 한다.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교수가 되려면 이학박사 학위는 갖추어야 한다. 학위는 프로페셔널이 되었다는 일종의 자격증 쯤 된다. 하지만 박사학위를 갖춘다고 모두가 교수가 되는 건 분명 아니다. 개중에는 시간강사로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도 있고,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교수’ 기회가 자신에게 돌아오길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박사학위를 받는 것 이외에 무언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그 무언가 때문에 교수가 되는 것은 천운과 노력과 실력이 겸비되어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학생들이 지레짐작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들려주려 하는 이야기는 그 무언가를 어떻게 얻느냐 하는 방법에 관한 얘기이다.

먼저 그 무언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그 무언가는 학자로서의 실력과 그 실력을 증명하는 논문 리스트이다. 문과 분야는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과 분야는 확실히 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 리스트가 그 사람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자료이며 교수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요건이다. 그렇다면 교수가 되는 방법이란 결국 어떻게 좋은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연구 성과를 얻고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 논문을 발표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 내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비법을 얘기할까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좋은 스승을 찾는 일이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많은 학생들이 좋은 스승을 찾지 않고 좋은 학교를 찾는다. 특히 외국으로의 유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심하게 나타난다. 외국 사정에 밝지 않고 소위 학교의 ‘name value'에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두어 이런 우를 범하는 것이다. 스승을 찾는 일은 내가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연구주제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가 관심이 가는 연구주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많은 객관적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선택한 연구주제 안에서 좋은 스승을 찾아야 한다. 누가 좋은 스승이냐는 주변의 평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국내에서 대학원을 진학할 경우 교수들에 대한 평판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외국 유학을 생각하는 경우 내가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안테나를 동원해서 스승을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스승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를 겸비한 스승이 나를 성공적인 교수로 이끌 수 있는 좋은 스승이라 할 것이다. 첫째,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수행하여 많은 연구업적을 쌓고 있는 학자여야 한다. 이는 말하지 않아도 자명한 얘기이다. 그 분야 최고의 학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면 우수한 연구성과를 얻게 될 확률도 높아지고 프로페셔널로서 좋은 평가를 받게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지금 당장 최고의 학자가 아니라도 그런 잠재력을 가진 젊은 학자를 찾을 수 있는 매의 눈을 당신이 갖기를 바란다. 둘째, 훌륭한 인격을 갖춘 학자를 찾아서 사제의 연을 만들어라. 내 경험으론 첫째 요건보다 둘째 요건이 교수가 되는데, 나아가서 훌륭한 학자로 발돋움하는데 훨씬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있어 내가 본받고 싶은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학한다면 5년이란 긴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나는 Dr. Richard Amasino 라는 이탈리아 계통의 미국인 교수를 스승으로 선택했다. 50여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한 가장 큰 행운의 선택 중에 하나가 이 분을 만나고 선택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게 무슨 특별한 선견지명이 있거나 사람을 보는 혜안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분을 만난 건 순전히 요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분에게서 수학한 5년 동안 내가 배운 것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격언을 체득한 것이다. 박사과정 내내 항상 칭찬하고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던 분이셨다. 심지어 내가 명백히 잘못한 일에 조차도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mistake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아낌없는 신뢰를 보내 주셨던 분이다. 그래서 나는 잘하고 있고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박사과정 5년을 뿌듯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이러한 행운을 누구나 누릴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인격적으로 완성된 분을 만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다보면 그런 행운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는 해줄 수 있다.

그 다음 중요한 일은 내 연구주제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서도 흥미로운 연구주제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는 과감히 그 주제를 버리고 내가 재미를 느끼는 주제를 선택하라. 하루 종일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주제여야 5년 이상 걸리는 학위 과정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 밤을 몇일이고 새워가며 일을 해도 피곤함을 못 느끼고, 꿈조차도 그 연구주제에 대한 꿈을 꿀 정도로 미쳐있어야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몰입해 들어가면 그 속에서 연구 성과가 저절로 얻어지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Richard Amasino 교수 밑에서 함께 수학했던 동료들 몇몇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즉 좋은 스승 밑에서 모든 제자들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당연한 교훈을 얻었다. 어떤 이는 일이 끝나는 저녁 시간 때면 항상 바를 찾아가서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시간을 보냈고, 어떤 이는 노래에 빠져 전국 순회 공연을 다니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연구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늘상 투덜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이들 실패한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연구주제와 사랑에 빠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Amasino 교수의 인격으로 미루어 보건대 자신의 연구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꾸어 달라고 했으면 기꺼이 함께 새로운 연구주제에 대해 고민해 주었을 분이다. 그들은 그런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ly!)의 습관을 몸에 익혀라. 노벨상 수상의 업적은 거의 모두 다르게 생각하기에서 나왔다. 노벨상은 못받았어도 대단한 발견으로 알려진 많은 연구성과들이 남들이 그저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일들에서 나왔다. 흔히 좋은 science는 행운과 노력이 겸비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 행운조차도 내 자신의 노력의 일부로 얻어지는 것이지 그저 얻어지지는 않는다. 그 행운이 많은 경우 다르게 생각하기에서 나온다. 내 경험으로 나에게도 노벨상에 버금가는 발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박사후 연구원 시절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인위적으로 엄청나게 증가시키는 과발현 실험을 연구의 일부분으로 일상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전자를 과발현시키는 실험에서 종종 오히려 유전자의 발현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cosuppression 효과를 발견하곤 했다. 이러한 일이 너무 일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지 않고 그냥 cosuppression 되었네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때 내가 다르게 생각하기를 실행해서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었다면 2006년 microRNA에 노벨생리의학상이 주어질 때 공동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하지 않았을까! 후에 두고두고 그때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라고 무릅을 치며 안타까워 하는 부분이다. 당시 microRNA를 연구할 수 있는 모든 연구수단을 다 가지고 있었는데 참으로 아쉽다.

다 아는 얘기를 한 것 같다만 때로 진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온다. 좋은 논문리스트로 자신의 CV (Curriculum Vitae)를 채우고 나면 여기저기서 자신을 찾는 교수채용 공고가 나오는 상황을 느긋이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나 되는 지 우리 학부생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 의사가 되는 과정과 비교를 해본다. 박사학위를 받는데 대략 5년 정도, 이 기간이면 의사의 길을 들어섰을 때는 인턴 초짜가 되어있을 때이다. 박사후 연구원은 대개 4-5년 정도하게 된다. 이때쯤이면 의사들은 군의관 중이거나, 군의관을 끝내고 돌아와서 레지던트 생활할 때 쯤일 것이다. 박사후연구원이 끝나면 교수가 된다. 아니, 정확히는 교수가 되면 박사후연구원이 끝난다. 그러니까 교수가 되는 것이나 의사가 되는 것이나 시간 상으로는 비슷하게 걸린다. 다만 어느 직업이 만족도가 높을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놓여있을 뿐이다.


2011년 6월 4일

댓글 (1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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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동하2024-02-24 01:58:43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