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의 즐거움
어리석음의 즐거움 Grade E
도전과제 grant proposal을 부랴부랴 써놓고 인천에 대학장기발전계획 관련 워크샵을 1박2일로 다녀온 길이다. Proposal 쓰느라고 밤을 새운데다 워크샵 회의로 부산을 떨다가 돌아온 터라 마치 공연이 끝나고 난 뒤의 빈 터에 호젓이 남겨진 기분이다. 마음을 추스릴 겸 이것저것 뒤적이다 진우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과학 에세이 글이 눈에 띄어 한가로운 기분으로 읽었다. ‘과학에서 stupidity의 중요성’이라는 글인데 꽤 마음을 울린다.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가 아니고 공명이 되었다는 얘기이다. Science를 하는 행위는 ‘Unknown'을 풀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이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는 취지의 글이다. 오죽하면 내가 못 푸는 문제는 노벨상 수상자도 ‘그건 나도 해답을 못찾겠는데’라고 답을 했을까! Grant proposal을 쓰면서 느꼈던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을 정확하게 집어낸 글이다. 우리 방 학생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아직도 읽지 않은 학생이 있다면 첨부된 글도 읽어보기 바란다.
지난 10월, 혹은 11월, 내가 또다시 바보같은 선택, ‘행정 보직’을 맡고 정신없이 스케줄을 소화해 나가는 와중에 문식이 ‘할 말 있는데요’ 하면서 내 방을 찾아왔다. 우리 교수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 이 말인 지를 우리 학생들이 알까? ‘할 말 있는데요!’
문식이 나름대로 오랜 기간 고민을 거듭하다가 내 방을 찾아온 것이다. 아마 스스로 힘겨웠던 과정을 떠올리면서 복받쳤을 것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제 더 이상 연구 프로젝트에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겠습니다’라는 것이다. 우리 교수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바로 그 말을 내 귀로 들어야 했다. 그리곤 말은 못했지만 몇 달을 나도 마음앓이를 해야 했다. 내가 문식에게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즐거움의 과정을 제대로 안내하지 못했다. 그동안 내 인생에 커다란 사건이 있었고, 이제 겨우 정신을 수습하게 된 상황에서 보직을 덜컥 맡아버린 자괴감이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보직을 맡은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지만 적절하지는 못했다.
문식을 떠나보내고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던 ‘다년생 생활사’에 대한 호기심이 내 마음을 떠났다. 그리고 별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더 이상 어리석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만 풀겠다는 안이한 생각이 나를 주저앉히고 있었다. 그리고 또 몇 달이 흘렀다. 우울한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연구비가 모두 바닥이 나는 4월이 다가오면서 새로운 grant proposal을 써야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그래 새로 시작해 보자. 과제 제목도 ‘도전과제’ 라잖아. 풀리지 않을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난 그동안 연구에 관한한 대단히 운이 좋았다. 이제와서 특별히 운이 나빠야 할 이유가 없다. 될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어지면서 한 일주일 행복한 글쓰기 시간을 보냈다. 과제를 쓰면서 내 아이디어가 견고하지 않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고, 문식이 겪었을 마음의 고충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 question도 명확하지 않은 데 무작정 해보자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희망적이다. Scwartz 교수의 글은 그런 나를 더더욱 부채질한다. 새로운 길을 열어 볼 생각이다. 가시덤불 뒤덮인 그 길 속에 무엇이 있을지?
Reference J. Cell Science (2008) Vo.l 121, 1771. The importance of stupidity in scientific research.
2011년 3월 5일
첨부파일 (1개)
- 2009_JCS_Importance_of_stupidity_in_scientific_research.pdf (35 KB, download: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