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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줄기세포와 패러다임의 변환, 그리고 화장품

이일하l 2010-12-17l 조회수 1164

식물줄기세포와 패러다임의 변환, 그리고 화장품                                        Grade E

간혹 생물학을 평생의 업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대학교수라는 직업에 호기심을 가진 중·고등학생들에게, 혹은 진로를 결정해야 할 순간에 직면해있는 졸업반 대학생들에게. 돌이켜보면 내겐 두 번의 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대학 3학년 때 생화학 수업을 들으면서 헤모글로빈의 작용기작을 이해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인간의 호흡을 담당하는 헤모글로빈이 산소가 필요한 조직에서는 어떻게 산소를 내려놓고 이산화탄소와 결합하는 지, 또 산소가 풍부한 허파에서는 어떻게 산소와 결합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려놓는 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면서 기계론적 생명의 이해가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모든 생명현상은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이해 가능하며, 생명현상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 헤치는 일이야말로 흥미진진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두 번째 계기는 내가 왜 수많은 생물학 영역 가운데서 식물학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세포생물학 수업 시간에 동물과 식물의 차이로서 식물의 전체형성능에 대한 얘기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동물의 분화된 세포는 다시 수정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식물의 분화된 세포는 그것이 줄기이든, 잎이든, 혹은 뿌리이든 상관없이 모두 미분화된 수정란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전체형성능(totipotency)를 가진다는 것이다. 당시에 들었던 식물의 전체형성능은 대단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학문의 대상으로서 식물학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최근 식물의 전체형성능과 관련된 흥미로운 논문이 Nature Biotechnology1 에 국내 벤처캐피탈 ‘(주)운화’에 의해 발표되면서 국내에 약간의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찻잔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게 되었지만 나름 흥미로운 상황의 전개였던 까닭에 여기 소개해본다. 올해 10월경 지경부 전략기획단의 MD로 활동하시는 김선영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Nature Biotech.이라는 상당히 Impact Factor가 큰 저널에 (주)운화라는 벤처기업의 논문이 조만간 발표될 예정인데, 관련 건에 대해 지경부에서 후속연구를 대규모로 지원해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하고자 전문가의 조언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우리 연구실에서 식물의 재생능(regeneration; 식물세포의 pluripotency에 기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던 중이라 흔쾌히 자문에 응하겠다고 했고, 곧이어 Pre-print(논문이 출판되기 직전의 상태) 상태의 논문을 받아보게 되었다. 처음 논문을 읽었을 때는 사실 충격이었다. 이후 논의 과정에서 논문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2차대사물질의 생산수율이 대단히 높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논문의 의의는 대단한 것으로 인정된다.

논문의 내용은 이렇다. Taxol이라는 항암제를 생산하는 주목나무의 줄기를 잘라서 적절한 식물호르몬(auxin)을 처리한 뒤 형성층세포를 분리하여 배양하면 균일한 미분화 세포군을 계대 배양할 수 있다. 이 형성층 세포에 적절한 시점에 jasmonate라는 유도물질을 처리하면 대량의 taxol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을 인삼에 적용했을 때 역시 높은 수율의 ginsenoside 생산이 가능했다. 따라서 모든 식물의 2차대사산물 생산에 이 기술이 활용될 수 있는 보편성(generality)을 가진다. 이 논문에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논문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식물의 ‘줄기세포’를 분리해내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 식물의 줄기와 ‘줄기세포’라는 용어에 언어적 혼란(semantic confusion)이 있다. 주목나무의 ‘줄기’를 얘기할 때는 글자 그대로 식물의 여러 부위 중 줄기 부분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주장하는 ‘줄기세포’란 황우석박사가 유명하게 만들었던 배아줄기세포의 그 ‘줄기세포’를 의미한다.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줄기세포의 정의를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줄기세포’란 세포분열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일부 세포는 미분화된 상태-수정란 상태를 연상하면 된다-를 유지하고 일부는 특정 조직으로 분화되는 능력을 갖춘 세포를 말한다. 이러한 정의는 동·식물 모두에 적용되는 개념으로서 이에 따르면 (주)운화에서 분리했다는 형성층세포를 줄기세포라 정의하는데 무리가 없다.

이제 다시 사건(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훌륭한 논문이 발표되었고 응용성 또한 적지 않은데 그냥 연구를 지원하면 되지 무슨 상황이랄 게 있나 싶지만 조금 속내를 들여다보면 만만치 않은 패러다임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기존의 식물조직배양 전문가들은 이 논문과 저자들의 주장을 거의 사기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하고 여기에 대규모 국가 연구비가 지원되는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상태이다. 내가 패러다임의 충돌이라고 여기는 부분과 식물조직배양전문가들의 우려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같은 현상에 대한 서로 다른 프레임적 분석이란 생각이 든다. 국가연구비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일종의 ad hoc committee가 구성되었다. 식물조직배양 전문가와 식물형성층 분야 전문가, 식물발생 전문가 등 해서 나를 포함 4명의 전문가가 모였다. 이 모임의 논의를 통해 이런 종류의 논쟁이 꽤 오래전부터 국내에서 진행되어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운화의 국가연구비 수주를 위한 노력이 이미 그전에도 좌절된 적 있었고, 그 이유도 되풀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직배양 전문가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주)운화의 기술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첫째는 (주)운화에서 주장하는 줄기세포라는 것이 이미 일반적인 조직배양 기술에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인데 왜 새로운 발견인양 과장하고 있느냐라는 것이다. 학문적인 측면에서 신규성(novelty)이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둘째는 (주)운화의 기술로 생산한 taxol의 생산수율이 일반적인 조직배양 기술에 의한 생산수율에 비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이다. Nature Biotech.에 실린 논문의 결과를 보면 일반적인 조직배양에서 얻게 되는 수율의 평균값 정도도 되지 않는 낮은 수율이라는 얘기인데 이 부분은 적절한 지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2차대사산물의 생산에 (주)운화 기술의 초점이 맞춰진다면 생산수율을 증진시키는 방안에 대한 기술적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다양한 논의를 통해서 ad hoc committee가 끌어낸 결론은 (주)운화의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pilot project를 진행해보고 성과가 좋으면 이후 대규모 지원을 고려해보자는 것이었다.

이제 내가 패러다임의 충돌로 받아들이는 이유에 대해 얘기해보자. 이 논문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일련의 논문들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기존의 패러다임은 식물의 전체형성능에 대한 우리들의 오랜 패러다임을 말한다. 즉 식물의 모든 세포는 전체형성능(totipotency)을 가진다는 패러다임인데 나를 식물학자로 이끌었던 바로 그 개념이다. 모든 식물세포가 전체형성능을 가지고 있음을 보인 실험은 1960년대 쯤 발표된 것으로, 잎, 줄기, 뿌리 등을 분리하여 callus라는 무정형의 세포덩어리를 만들고, 이후 적절한 호르몬(auxin과 cytokinin)을 처리하면 완전한 식물로 분화시킬 수 있다는 실험이다. 돌이켜보면 이때 callus로 유도한 식물조직은 하나의 세포라기보다 다양한 형태로 분화된 세포들의 집합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모든 식물세포는 전체형성능을 가진다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형성되게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이 패러다임은 전혀 도전받지 않고 금과옥조처럼 모든 식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 패러다임을 부정하는 믿을만한 논문들이 하나씩 발표되게 된다2, 3.

논의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식물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동물과 식물의 커다란 차이는 동물은 움직일 수 있지만,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고 고착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서 동물은 대개 운동을 통해 반응을 하지만 식물은 생장을 통해 반응을 한다. 음지에 식물을 놓아두면 빛이 있는 방향으로 식물이 자라는 것이 좋은 예이다. 고착생활을 하는 식물에게 주어진 환경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가변적이다. 따라서 식물은 끊임없이 생장을 해야 하고 이러한 생장을 위해 식물은 동물과 달리 영속적 배발생(permanent embryogenesis)을 하는 특성을 가진다. 식물엔 줄기의 끝과 뿌리의 끝에 정단분열조직(apical meristem)이라는 특수한 세포군이 있는데 이 세포들은 미분화 세포군으로서 자신의 정체성-배아와 같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줄기와 뿌리로 분화되는 세포들을 공급하는 동물의 배세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정단분열조직이 영속적 배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식물의 끊임없는 생장의 원동력이다. 즉 전체형성능을 가진 줄기세포가 뿌리 끝과 줄기 끝의 정단분열조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줄기세포’가 부피 자람을 담당하는 형성층에도 존재하며, 이들의 존재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부정하게 만든다. 식물학 분야의 거장 중 한 분인 Caltech의 Meyerowitz 교수는 최근 Dev. Cell이라는 저널에 발표한 논문3에서 모든 식물세포가 전체형성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세포, 즉 내초(pericycle)라 불리는 조직의 세포가 ‘줄기세포’로서의 특성을 가지며 전체형성능을 가진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러한 주장은 사실 그 전에도 몇몇 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으나2 크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다가 Meyerowitz 교수가 정색을 하고 논문을 발표하자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아진 것이다. 심지어 식물학 분야의 최대 거두 중 한 분이 실험적 증거들을 가지고 제기한 주장에 대해서도 많은 식물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가 연출된 것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뜨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Meyerowitz 교수 이전에도 줄기세포에 해당하는 식물조직이 있으며, 이를 한 층의 세포층으로 이루어진 줄기세포 (single layered meristem; 내초(pericycle), 체관과 물관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한 층의 세포층 혹은 형성층)라 정의한 학자들도 있었다4. 내가 보기에 식물에 줄기세포가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모든 식물세포가 전체형성능이 있다고 믿었던 것은 배양한 세포의 일부에 ‘줄기세포’가 섞여 있어서 그것이 전체형성능을 제공한 결과로 해석된다. ‘모든 식물세포에 전체형성능이 있다’는 패러다임은 ‘내초에 해당하는 줄기세포만이 전체형성능을 가지며, 내초는 모든 식물 조직 및 기관에 존재한다’는 패러다임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내초의 원래 정의는 뿌리에서 관다발 조직과 내피(endodermis) 사이에 존재하는 한 층의 세포층이므로 모든 식물조직에 존재하는 내초와 같은 줄기세포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다른 적절한 용어 또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다시 사건을 복기해보자. (주)운화의 형성층 분리를 통한 줄기세포 배양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매우 잘 맞아 떨어진다. 내가 이 논문을 읽으면서 매우 의미있는 논문이라 판단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조직배양 전문가나 여타 식물학자들은 기존의 패러다임, ‘모든 식물세포는 전체형성능을 가진다’는 프레임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말이 안되는 논문이라 판단한 것이다. 더구나 식물조직배양 전문가들은 계대배양을 하는 과정에 (주)운화에서 주장하는 그런 줄기세포가 결국 선택되는 것인데 그게 무어 새로운 발견이냐라고 반문한다. 맞는 얘기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우회해서 줄기세포를 찾는게 아니라 내초세포를 포함한 형성층을 배양하게 되면 바로 줄기세포를 찾게 되니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아닌가 하는게 내 생각이다. 어쨌든 많은 식물학 관련 연구자들에 의해 (주)운화의 발견은 폄훼되었고, 결국 그들의 성과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MBC와 몇몇 언론매체에서 보도가 되긴 했지만 이 정도의 논문과 impact라면 마땅히 가졌어야 할 영예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논쟁의 핵심은 모든 식물세포가 전체형성능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인데 우리 안의 논쟁은 전혀 엉뚱한 국면을 띄고 있었다. 이 내용은 이 글에서 구태여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하나는 밝히고 넘어가고 싶다. (주)운화 논문의 주저자가 정통 과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 논쟁에서 대단히 중요한, 아무도 입 밖으로 발설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모두의 마음속에 담고 있는, 핵심쟁점이었던 것 같다. 생물학 연구를 제대로 훈련한 경험이 부족한 연구원이 ‘형성층 분리’라는 우연한 행운을 거머쥐었고, 그것이 정통 조직배양전문가들 눈에는 비과학적 연구 성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과학적 발견이 우연을 통해서 이루어졌던가! 우연한 발견은 과학적 발견이 아니라는 주장이야말로 넌센스 아닌가! 전자기학의 원리를 규명한 그 유명한 패러데이는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않았지만 얼마나 훌륭한 과학적 업적을 남겼던가. 그의 스승 험프리 데이비는 ‘내 생애 최고의 발견은 패러데이의 발견’이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과학자들이 좀 더 열린 자세를 가지고 이 문제를 다루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식물줄기세포를 이용한 기능성 화장품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글을 맺으려 한다. 동물의 줄기세포를 이용한 다양한 의약학적 응용은 쉽게 수긍이 간다. 그러나 식물줄기세포를 이용한 기능성 화장품이 왜 효과가 있는 지는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이 식물이라면 줄기세포를 이용하니까 서로 같은 생물학적 배경 때문에 좋겠지 하는 근거를 갖다 붙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줄기세포’이니까 식물의 것도 좋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부추기는 것이라면 아서라, 말아라!

1. Lee et al. (2010) Nature Biotechnology Vol 28, 1213-1217
2. Atta et al. (2009) Plant J. Vol. 57, 626-644.
3. Sugimoto et al. (2010) Dev. Cell Vol. 18, 463-471.
4. Casimiro et al. (2003) Trends in Plant Science Vol. 8, 165-171.

2010년 12월 17일/2011년 1월 1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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