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연구하며, 교육하며 (Professor's Essay)

뮤지컬과 과학연구

이건수l 2011-04-10l 조회수 5353

 
  오페라의 유령은 3대 뮤지컬의 하나로 꼽히는 명작이다. 파리의 한 오페라 극장의 합창단원인 크리스틴은 우연히 주어진 기회에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여 단숨에 프리마돈나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크리스틴은 어떻게 노래를 잘 하게 되었는가? 기실 크리스틴은 극장에 숨어살아서 유령이라고 일컬어진 사내로부터 비밀리에 음악수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크리스틴은 자신을 키워준 유령이 아닌 잘생기고 돈 많은 라울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크리스틴의 마음을 얻지 못한 유령은 집요하게 스토킹을 하다가 결국 크리스틴의 단호함을 이해하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라진다는 것이 대략의 줄거리다.

 

 

  이 뮤지컬에서 크리스틴은 청순하게 보여지지만 실상은 순진한 여자는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어려울 때 키워준 유령을 거부하고, 대신 멋있고 힘있는 라울과 사귀는, 그리고 성공에 목마른 사람이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멋있게 보여져야 하니 얼마나 복잡한 마음을 가진 여인인가? 유령과의 비밀스런 만남을 통하여 크리스틴의 본질을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연구란 대상의 정체를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밝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실험실에서 수행되고 있는 연구로 그 예를 들어보겠다. 아기를 낳는 일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일이다. 때로는 원치 않는 애가 생겨서 문제이지만, 동시에 애가 서지 않아 애태우는 부부도 적지 않다. 통계로 보면 10쌍의 부부 가운데 한 쌍 정도가 애를 갖지 못하는데, 그 원인 제공 비율이 남녀가 비슷하므로, 결국 약 20명 가운데 한 명의 남성은 애를 못 낳는 불임 환자이다. 남성 불임은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으나, 이중 유전적인 요인도 큰 비중을 차지하며, 특히 Y염색체의 미세결실이 빈번히 관찰된다. 결실된 부위에 존재하는 유전자가 결국 남성 불임을 유발하는 원인 유전자로 추측할 수 있는데, 그 유전자의 이름이 DAZ 이다. , DAZ가 결실되면 남성불임이 유발된다. 하지만 DAZ가 어떤 역할을 하기에 남성불임을 유발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따라서 본 실험실에서는 DAZ의 본질을 연구하기로 했다.

 

  DAZ를 어떻게 연구해야 하나? 우선 생김새를 본다. 이는 우리가 사람을 파악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사람은 대상을 파악하는데 직관을 중요하게 사용하며, 이 때문에 우리는 대상을 보는 즉시 나름대로 판단을 하게 된다. DAZ의 생김새를 보면 RNA와 결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는 그 기능이 RNA 대사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기능이 파악되지 않는 DAZ repeat이라는 부분이 있다. 다만 DAZ 소속 단백질들이 특징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DAZ repeat이 어떤 보존된 기능에 필요할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DAZ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이와 결합하는 단백질들을 조사하기로 했다. 마치 크리스틴이 유령과 만났다는 사실로부터 여러 가지가 들어났듯이 DAZ의 기능을 이해하는데 단초가 제공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특정 단백질과 결합하는 단백질을 동정하는 여러 다양한 방법 가운데 yeast two-hybrid interaction 방법을 동원하여 DAZ와 결합하는 단백질을 찾아 보았고, dynein light chain이라는 단백질을 동정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microtubule을 따라 cargo를 운반하는 dynein이라는 단백질 복합체의 일부인 dynein light chain DAZ과 결합한다는 사실이 너무 의외였기 때문에 반신반의했고, 따라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 결합의 진실성을 확인하였다.

 

  그럼 이 두 단백질이 결합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는 아직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이 추측하고 있다. DAZ가 특정 mRNA와 결합한 후, 이를 dynein에 연결시킨다. 그리고 세포 내 특정 부분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기실 남성생식세포가 제대로 분화하여 정자가 되려면 mRNA 축적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자에서는 유전물질인 DNA를 작은 핵에 촘촘히 넣어야 하고, 그 때문에 분화 후반으로 가면 전사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남성생식세포의 생존과 분화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단백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중을 위해 미리 mRNA를 축적, 보관하는 기전이 잘 발달되어 있다. 만일 DAZ가 결핍되면 mRNA 축적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생식세포가 발생되지 못하여, 결국 불임이 된다는 것이 우리의 추측이다.

 

  이 얘기가 지금까지의 상식을 뛰어넘는 흥미로운 내용인가? 그리고 그럴 듯 한가?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일 대다수의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얘기라면 넓은 독자층을 가진, 그래서 잘 알려진 논문집에 수록될 수 있다. 참고로 위의 내용은 유럽분자생물학회 잡지인 EMBO Journal에 수록되었다. 이런 원리는 뮤지컬에서도 적용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작품일수록 여러 도시에서 오랫동안 공연된다. 예를 들면 오페라의 유령은 런던에서 8, 뉴욕에서 10,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도 지난 1년 동안 공연이 진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공감대를 얻는다는 측면으로 볼 때, 이야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완성도도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흥미로운 내용이라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의 상식을 바꾸게 하는 좋은 내용이라도 완성도가 떨어져서 다른 과학자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결국 실패한 연구가 된다. 따라서 실험실에서는 연구의 완성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야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을 때 평판 좋은 논문집에 출판할 수 있게 된다. 만일 결과가 과학자의 일부에게만 흥미를 준다면, 그에 걸맞는 논문집에 출판하면 된다. 반면에 연구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어느 논문집에도 발표할 수 없게 된다. 대학원에서 배우는 것은 연구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 즉 과학적인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우리가 과학을 하는 데는 목적이 있다. 이번 경우는 남성불임의 이유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치료법을 강구하는 것이고, 이 목적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모르는 것을 파해치는 호기심, 그리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려는 노력이 우리가 연구를 하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완성도 높은 뮤지컬을 제작하여 공연하는 작업과 근본적으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2011년 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