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삶

이건수l 2011-04-10l 조회수 3577

  달리기는 나의 취미 가운데 하나이다. 주로 헬스클럽에 있는 런닝머신 위에서 뛰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도로 위를 뛴다. 가끔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다른 지방에 출장 갈 기회가 있으면 그 곳에 유명한 코스를 뛰기도 한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달리기는 지난 7월에 시원한 동해바람을 맞으며 뛰었던 울릉도 해변도로이다.

 

  많은 운동 가운데 하필이면 달리기를 하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지금까지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달리기만큼 주위 환경에 구애 받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도 없다. 이를테면 테니스를 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하고, 골프를 하려면 골프장을 예약해야 한다. 그런데 달리기는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대충 해결된다. 또한 달리기는 비교적 단시간에 충분한 운동량을 달성할 수가 있다. 걷기가 매우 좋은 운동임은 잘 알려져 있는데, 뛰는 것은 근본적으로 걷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다만 걷는 것 보다 약 두 배의 열량을 소모하기 때문에 운동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 한 시간 뛰면 두 시간 걷는 것과 같다.

 

  달리면 힘들지 않느냐는 뻔한 질문도 여러 번 들었다. 물론 힘들다. 누구는 한참 뛰다 보면 마치 구름 속을 거니는 듯한 환상(running high)에 빠져들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건 경험하지 못했고, 뛰면 뛸수록 힘만 든다. 마라톤대회에 가면 반환점을 돌아 도착점에 가까워올수록 발이 점점 무거워지고 숨이 차오르지만, 조금만 더 뛰면 결승점에 다다르고 그러면 더 이상 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뛰어간다. 마라톤 결승점을 통과했을 때의 기분은 뛰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얼마나 좋은 기록으로 뛰었는가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 그리고 당장은 더 이상 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무척 기분 좋게 만든다. 마치 학기말 시험을 마친 후에 기분이랄까. 차이는 시험은 다시보고 싶지 않지만 마라톤은 또 뛰고 싶어진다. 아마 이런 성취감과 희열을 맛보고 싶어서 마라톤을 하는가 보다.

 

  성공적인 마라톤 레이스를 마치려면 스스로의 페이스에 따라 달려야 한다. 만일 나보다 잘 뛰는 사람들을 좇아 뛰어나가면 초반전에는 좋은 기록으로 달려가게 되지만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으로 오는 그 길은 지옥길이 되어버린다. 또한 만일 스스로의 페이스보다 천천히 뛰면 비교적 좋은 상태로 결승점에 들어오기는 하나, 왜 뛰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성취감은 반감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최선의 기록을 만들면서 성공적으로 레이스를 마치려면 페이스에 따라야 한다. 연습은 자신의 페이스를 깨닫게 하고 이를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데도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이를테면 좋은 과학자가 되겠다는 목표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거의 십여 년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이를 이루기 위한 전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매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한다. 살다 보면 생활이 힘들 때도 있고, 주위의 여러 상황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이겨내려면 스스로의 페이스를 지키면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언젠가 내 목표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은 남들과 경쟁하여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페이스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이를 어떻게 끌어올릴까?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고,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살면서 치러내는 작은 레이스들이 매우 요긴하다. 작은 레이스를 뛰면서 오버페이스도 해보고, 언더페이스도 경험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가지 실험을 동시에 수행하면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경험이 값지다. 또한 자신의 연구를 논문집에 어렵사리 출판하는 경험도 매우 요긴하다. 이런 작은 레이스를 끝낼 때마다 스스로에게 가차없는 반성을 함으로써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가게 된다. 일반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페이스를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달리기의 페이스를 올리는 방법 중 하나는 언덕을 반복적으로 올라가는 것인데, 이는 오버페이스를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젊은이들은 오버페이스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달리기에서는 동료들과 같이 뛰면 페이스가 향상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내 주위의 사람들은 경쟁상대가 아니라 같이 뛰어가면서 서로의 페이스를 올려주는 친구들이 된다. 모두가 성공적인 마라토너가 되기를 기원한다.



<200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