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로 살아가는 즐거움

이일하l 2011-06-15l 조회수 246

교수로 살아가는 열두가지 즐거움                                        Grade E

나는 교수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다. 교수가 아니었으면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교수라는 직업이 주는 만족감은 대단하다. 이런 만족스러운 직업인 교수가 될 수 있는데도 다른 직업을 기웃거리는 우리 생명과학부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상하다 못해 안타깝기조차 하다. 해서 지난 번 예고한대로 교수로 살아가는 즐거움 열두가지를 정리해서 소개할까 한다. 교수라는 직업은 연구와 교육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교수로 살아가는 열두가지 즐거움은 연구와 교육의 현장에서 얻게 되는 즐거움과 2차적으로 얻어지는 파생적 즐거움으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유레카의 순간들; 발견과 발명의 즐거움
과학적 지식을 발견하는 연구자로서 극상의 즐거움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유레카!를 외치는 바로 그 순간의 환희에 있다. 목욕탕에 앉아서 부력의 원리를 깨치고 유레카를 외쳤다는 아르키메데스처럼 새로운 발견은 항상 우리를 달뜨게 만든다. 나는 이십여년 연구생활을 하면서 두 번 정도 유레카를 외치는 행운을 얻었다. 1등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의 기쁨이 그 정도가 될까? 엔돌핀이 온 몸에 분비되면서 엑스터시를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그런 순간들을 한두번쯤 겪었을 것이다. 앞으로 내 앞에 몇 번의 ‘유레카 순간’이 더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그걸 생각하면 내일이 자못 흥미진진해진다.

유레카를 외치는 극상의 환희가 아니어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은 항상 즐겁다. 나는 새로운 유전자를 발굴하고, 그 유전자에 이름을 붙이는 일에 대단한 즐거움을 느낀다. 대개 유전자의 이름은 그 유전자의 기능이 망가진 돌연변이체의 표현형에 입각해서 붙여지는데, 이때 연구자들은 어떤 이름이라도 붙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요다(YODDA)’라는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 이름을 유전자 이름으로 붙이기도 하고 ‘SUPERMAN’이라는 수퍼히어로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그 모두 해당 돌연변이체를 동정한 연구자가 특권을 발휘하여 붙인 이름이다. 요즘 나는 이러한 즐거움을 우리 대학원생들에게 양보하고 있다. 보다 근사하고 신세대의 정서에 맞는 이름이 붙여지기를 기대하면서.... 이름을 붙이는 일은 가뭄에 콩나듯이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우리 연구실처럼 분자유전학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는 돌연변이체 동정이 일상적인 일이듯이 이름을 붙이는 일도 일상적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전자가 학계에 등록되는 것이다.

2. 밤샘 논문 작업 뒤의 뿌듯한 성취감; 새벽 귀가길의 오뎅 한그릇과 소주 한잔, 크~
연구를 하다보면 내가 발견한 지식을 논문의 형태로 발표하게 된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으면 때론 초치기의 심정으로 논문 작업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남보다 앞서서 발표를 하지 않으면 내가 발견한 지식이 남의 것이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학계에서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 전공분야의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누군가와 경쟁 속에 놓여있었던 때가 허다했다. 덕분에 데이터를 다 갖춰놓고 밤새 논문을 쓰는 상황이 여러 번 벌어졌었다. 하루라도 일찍 투고를 해야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밤새 논문 작업을 하고 논문 투고를 온라인상의 업로드로 끝내고 나면 날이 훤하게 밝아오는 그런 날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때 녹두거리까지 내려가서 시원한 오뎅 국물에 소주 한잔을 걸치면 이토록 큰 성취감을 언제 또 누릴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3. 연구결과의 발표와 그로인한 존재감; 내가 여기에 있다!
논문이 발표되고 나면 여기저기서 reprint나 혹은 PDF file을 보내달라는 이메일을 받는다. 그때마다 그저 달라기 뭐하니까 하는 소리겠지만 논문 참 괜찮았다는 말을 한마디씩 한다. 그때 느껴지는 성취감과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더구나 이 논문이 소위 name value가 높은 저널에 발표된 논문이면 한동안 어깨가 우쭐해서 다닌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여기저기 국제학회에서 나를 연사로 모시겠다는 이메일이 날라 오고 올해에는 어디로 여행할까 부푼 꿈에 잠긴다.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여기 이곳에 존재함을 알리는 일처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4. 쇼우 타임!, 멋진 공연 후의 행복감; 청중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다!
과학은 내가 하는 연구 성과를 세상에 알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얻은 연구성과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리게 된다. 논문을 통해서 글로 알리기도 하고, 컨퍼런스, 세미나 등에 초청되어 말로 알리기도 한다. 연구자에게는 프리젠테이션을 할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다. 나에게 프리젠테이션은 일종의 쇼우 타임인 것 같다. 내성적이어서 별로 말 수는 없지만, 발표 때만 되면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나는 세미나나 학회에서의 발표를 즐긴다. 이때 청중들을 휘어잡고 있다는 그 느낌은 낚시꾼이 월척을 손에 거머쥐었을 때의 그 느낌과 흡사하지 않을까. 내가 들은 찬사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찬사는 학회 발표가 끝나고 대학원생 중의 한 명이 ‘선생님, 너무 멋져요!’하는 말을 들었을 때다. 내가 그만큼 청중들을 사로잡았다는 얘기인데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우쭐해진다. 그런 기억들이 쌓이면서 나는 교수로서의 행복감에 잠긴다.

5. 평판을 얻게되는 충족감; 나를 알아보는 세상의 눈
Life라는 일반생물학 교과서 서론에 과학자들은 평판을 reward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기술하고 있다. 내가 유난히 명예욕이 있어서 주변의 평판에 예민한가 했더니 이게 일반적인 과학자의 속성이란다. 해서 요즘은 내가 그런 평판을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의 일부로 생각한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연구를 하다보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 발견 속에서 세인들의 평판을 얻게 된다. 국제 학회에 나가보면 그저 이름으로만 알다가 직접 만나 인사하게 되었다고 반가워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내가 명성을 얻고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일은 분명 기분좋은 일이다. 교수로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이다.

6. 기다려지는 세계 여행; 학회가 있으면 어디든 간다
교수라는 직업이 갖는 또 다른 매력 중의 하나가 국제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난 매년 여름이면 내가 가고 싶었던 곳에서 진행되는 학회를 골라서 간다. 학회의 내용이 가장 중요한 장소 선택의 기준이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좋은 곳에서 행해지는 학회에 참석하려 한다. 몇 년 전 갔던 멕시코 학회, 이탈리아 학회는 다분히 여행을 즐기기 위해 선택했던 학회였다. 학회 중 여행을 함께 할 동지를 구하는 일 또한 즐거움 중 하나이다. 이화여대 이동희 교수님, 부산대 이춘환 교수님, 그리고 같은 학부의 조형택 교수와의 동행이 항상 즐거운 여행이었고 가능하면 그분들과 함께하는 학회 일정을 잡으려 노력한다. 적당한 관광과 엔조이를 위해서는 마음맞는 사람이 함께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이면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즐거움, 교수가 아니어도 가능한 일일까?

7. 지식 전수의 즐거움; 강의실 속의 행복
난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할 때가 행복하다. 새로운 지식을 전달할 때 학생들의 총총해지는 눈망울을 보면 즐겁고, 어줍지 않은 유머에도 웃어주는 학생들이 있어 행복하다. 내가 강의를 이렇게 즐기게 되리라고는 교수가 되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미국에서 박사과정,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보냈기 때문에 항상 언어가 스트레스인 상황에 놓여있었다. 때문에 영어로 발표해야 되는 상황은 항상 심적으로 부담스러웠다. 유학을 가서 처음 수업시간에 논문 발표 15분을 하는 데 얼마나 힘겨웠던 지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발표가 끝나고 classmate 한 친구가 던진 말, ‘영어가 문제여서 그렇지 니가 발표한 내용이 무언지는 다 알아 들었다’. 그런 격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생활하는 내내 발표는 힘겨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다 국내에 돌아와서 세미나 발표를 하고 강의를 하는데 우리말로 하는 일이 그렇게 신명날 수가 없었다. 내게 남을 가르치는 재주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십여년 동안 강의하는 즐거움에 묻혀서 보낸 것 같다. 항상 수업 전에 학생들에게 한 시간의 수업을 통찰할 수 있는 사진이나 그림이 없을까 찾아보게 되고, 어떻게 수업을 재미있게 풀어나갈까 고민하게 된다. 요즘은 심지어 수업이 없는 방학 동안에 심심해서 어떡하지 하는 고민까지 하게 될 정도다. 분명 강의하는 즐거움은 커다란 축복이다.

8. 성장하는 그들을 바라본다; 제자를 키우는 보람
‘늘푼수 없는게 훈장질이다’라는 말은 지구환경과학부 강헌중교수가 당신의 어머님이 하신 말이라며 종종한 얘기이다. 아마 학교 선생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아둔하게 살아간다는 얘기일 것이다. 교수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고. 늘푼수가 없어도 학생들을 길러내는 재미만으로도 교수라는 직업은 충분히 보람된 직업이다. 무언가 내 손길이 닿아서 무럭무럭 자라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이런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 처음 들어와서 아무 것도 모르는 초짜로 연구실 생활을 시작했던 학생들이 일년, 이년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해가는 것을 보는 즐거움은 씨앗에서 발아하여 무럭무럭 성장해가는 식물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남의 논문에 대해 비평하는 것도 어렵던 학생들이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분석과 견해를 다양하게 풀어놓고, 연구를 수행할 때 항상 지시만을 기다리던 학생들이 스스로 실험을 설계하고 다음 단계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지극히 즐거운 일이다. 이들 대학원생들이 4-5년 연구실 생활을 하게 되면 아주 능숙해져서 웬만한 박사후연구원 못지않게 일을 척척해 내게 된다. 이들이 학위를 하고 외국으로 박사후연구원을 떠나 좋은 논문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또 돌아와서 대학에 교수로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흐뭇해진다. 늘푼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풍요롭다. 이보다 더 보람있는 농사가 있겠는가?

9. 항상 청춘; 젊은 그들과 함께하는 인생
내 친구들 중에는 대학교수는 항상 젊은이들에 싸여있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다. 생각해보니 맞는 얘기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신체도 정신도 조금씩 탄력이 없어져서 나중엔 고목화된다. 다행히 대학교수들은 항상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과 생활하게 되고 이들과 생각을 공유하게 된다. 덕분에 정신은 말할 것도 없고 육체도 천천히 늙는 것 같다. 학생들과 함께 꿈을 꾸다보면 마음은 항상 청춘이다. 정년때까지 주욱 이런 젊음을 유지할 수 있으니 이 아니 축복인가.

10. 여유자적의 삶; 일상의 자유로움, 스케줄이 자유롭다!
대학교수가 가진 큰 이점 중에 하나가 스케줄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교수가 놀고 지낸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일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어느 직장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 보낸다. 하지만 여전히 내 일상은 대단히 자유롭다.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다. 강의시간과 회의 시간을 잘 피해야 한다는 약간의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일정이 자유롭다. 그래서 나는 가끔 영화를 보러 나가기도 하고 연극을 보러 동숭로에 나가기도 하며 문화를 즐기곤 한다. 이런 일상의 자유로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을까? 따뜻한 봄날 플라타너스 나뭇잎에 떨어지는 햇살을 보면서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프리랜서 못지않은 시간 활용의 여유는 빡빡한 일정에 파묻혀 헉헉대는 현대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11. 삶의 재충전; 안식년은 쉬라고 있는 것이다!
대학교수의 또 다른 장점으로 많이 꼽고 있는 것이 안식년인 듯하다. 내 동서 중 하나는 직장생활 하다가 무엇에 지쳤는 지 1년간 휴직계를 내고 스스로 안식년을 가졌다. 혼자서 쉬는 그 시간에 미대륙을 횡단하는 여행도 하고 가족들과 마음껏 시간도 보내고 했단다. 그 모두 내가 안식년을 가진 1년동안 해보았던 일들이다. 아마 내가 그렇게 안식년을 보내는 것을 보고 따라해 본 것이 아닐까? 아무튼 대학교수는 매 7년 단위로 안식년을 가진다. 요즘 반값 등록금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왜 교수들은 안식년을 가지냐고 힐난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대학교수들에게 안식년은 많은 경우 연구를 확대, 전환하거나 재충전하는데 활용된다. 즉 새로운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뭐라 해도 교수들에게 안식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아는 많은 교수들은, 나도 그랬지만, 안식년 동안 죽자 사자 연구에 몰두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안식년을 떠나는 교수들에게 꼭 한마디씩 해준다. 안식년은 쉬라고 있는 것이다!

12. 사회적 포지셔닝; 내 자리가 언제부터 저기에....
대학교수는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대접받는 직업군이다. 친구들 모임이나 친척들 모임에서 대학교수들의 말 한마디는 상당히 무게있게 받아들여진다. 물론 아파트 반상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기관에서 주최하는 회의에 초청되면 우리 자리는 항상 상석이다. 심지어 이은주 교수는 어느 관공서 회의에 불려갔는데 제일 상석에 자리를 내어줘 앉아있기 민망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대학교수가 되면 내 자리가 언제부터 저 위에 있었지 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교수로 살아가는 열두가지 즐거움 얘기를 했더니 지구환경과학부의 정해진교수는 적어도 백팔가지는 될텐데 왜 열두가지냐하고 반문한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이 글을 쓰기 전 어떤 행복이 있을까 늘어놓아 보았는데 이삼십가지는 아무런 생각없이도 술술 나온다. 이 모든 일이 내가 교수가 아니었으면 생각해볼 수 없는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