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핑 유전자 길들이기

이일하l 2011-05-24l 조회수 720

이기적인 점핑 유전자 길들이기                                        Grade E

학생들에게 리차드 도킨스의 불후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를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면 약 10%의 학생들이 매우 당황해하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다. 말하지 않아도 이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다. 하느님의 숭고한 섭리에 의해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모든 생명체는 그저 ‘유전자의 생존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고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약간의 유전학적 지식을 제공하면 점핑 유전자(transposon)가 도킨스가 주장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에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DNA 조각임을 인정하게 된다.

점핑 유전자는 게놈 속을 여기저기 마구 휘젓고 옮겨 다니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이인자라 불리기도 한다. 염색체의 어느 한 곳에 붙어있지 않는 특성 때문에 고전적인 멘델의 유전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유전현상을 보이며 따라서 이를 발견한 미국의 여성 유전학자 Barbara McClintock 여사-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가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도 했다. 점핑 유전자는 염색체를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흔히 자신의 유전자를 복사해서 증식시키게 되는데, 이 때문에 더 많은 자신을 맹목적으로 증식시키는, 오로지 자신을 증식시키는 것이 목적인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오로지 자신을 증식시키는 것이 목적인 entity가 있으니 그것이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자신을 증식시키는데만 몰두한다. 그렇다고 바이러스가 생명은 아니다. 바이러스는 증식을 위해 숙주세포를 필요로 하며, 순수 정제된 바이러스는 밀가루나 마찬가지의 무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생물이라는 숙주세포 안에 들어와야 숙주세포의 전사 및 해독 시스템를 이용해 더 많은 바이러스로 증식하게 된다.

바이러스와 점핑 유전자는 둘 다 도킨스 교수의 이기적 유전자 개념에 잘 맞아 떨어진다. 도킨스 교수에 의하면 삼라만상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복제와 변이’이며 이를 잘 구현하는 entity가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진화상의 가까운 친척이기도 하다. 진화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점핑 유전자로, 혹은 점핑 유전자가 바이러스로 전환되는 일이 흔히 벌어진다.

점핑 유전자의 정식명칭인 transposon은 생물체의 유전적 구성인 게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인간 게놈의 45%가 transposon이거나 혹은 transposon이 뛰어다니다 남긴 흔적들에 해당한다. 백합과 식물은 전체 게놈의 90% 이상이 transposon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필요 이상으로 큰 게놈을 가진 생물체는 어김없이 엄청난 양의 transposon을 게놈 내에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transposon에 어떤 생물학적 기능이 있을까? 반대로 아무런 생물학적 기능도 없다면 이건 진화 과정상의 대단한 농담이 아닐까!

Transposon의 기능으로 제안된 것이 각종 돌연변이에 대한 완충 기능이다. 우리 생물체는 환경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돌연변이원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 돌연변이원에 의해 중요한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나면, 즉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생존에 불필요한 부분의 DNA를 잔뜩 가지고 있으면 돌연변이원이 우리 게놈 속의 DNA를 무작위로 변형시킬 때 생존에 꼭 필요한 유전자가 아니라 불필요한 DNA 부위가 변형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 전체 30억 염기쌍의 DNA 중 유전자로 중요한 부분은 1.5%에 지나지 않고 98.5%가 정보가 없는 DNA 서열에 해당한다. 이중 절반 가량이 transposon인 것이다. 즉 게놈 내 transposon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돌연변이에 대한 완충기능이 커지게 되어 생물종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뿐일까? 오히려 반대로 transposon이 점핑하는 하는 도중에 착지점을 잘못 찾아 생존에 매우 중요한 유전자 가운데에 들어가 버리면 돌연변이가 되어 유전병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실제로 이렇게 발생한 인간의 유전병이 몇 가지 알려져 있다. 유전자의 점핑,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치명적일 수 있다! Transposon의 유익성과 유해함 사이에 어떤 손익분기점이 있을까? 아마 진화 과정에서 제거되어 없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이득이 손해보다 큰 것으로 보인다.

돌연변이에 대한 완충 작용만으로 transposon의 진화적 이득이 모두 다 설명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눈에 띄는 과학기사가 있어 소개한다(1). 점핑 유전자가 뇌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에 대한 소개 기사이다. 생쥐를 오랜 세대 동안 근친 교배시켜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inbred line을 얻었는데 이들의 지능이 제각각 다른데 놀란 과학자들이 그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점핑 유전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실험적 증거를 찾았다는 기사이다. 점핑 유전자가 뛰어다니면서 뇌의 뉴런 네트워크에 다양성이 제공된다는 설명이다. 점핑 유전자는 무작위로 아무데나 착지하는 것 같지는 않고 뇌의 뉴런 네트워크의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근처에 착지한다는 실험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태 확인되지 않았던 새로운 생물학적 사실의 규명이 필요하게 된다. 그동안 점핑유전자의 착지점은 무작위적일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특정한 유전자 근처에 선택적으로 착지한다면 그에 대한 분자 메커니즘적 설명이 필요해진다. 어떤 식으로든 점핑 유전자 길들이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꽤 재미있는 가설이긴 한데 이에 따르면 두뇌의 좋고 나쁨은 점핑유전자 마음대로가 된다. 즉 우연이 두뇌의 명석함 정도를 결정하게 된다. 내 개인적 경험으론 두뇌의 명석함 정도는 우연이 아니라 유전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일반적으로 머리가 좋거나 나쁜 형질은 유전되는 성질이 매우 강하다. 머리 좋은 집안에서 머리 좋은 자식들이 나오는게 내 일상적 경험과 부합한다. 이 때문에 강남 학생들의 서울대 진학률 증가를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생물학자로서는 영 불편하기 짝이 없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특정 지역에 몰려있으면 이들이 일류 대학으로 많이 진학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럼에도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는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계층의 대물림과 기회의 불공정성이라는 문제도 엄연한 사실이니까....

2011년 5월 24일

Reference 1. Do jumping genes spawn diversity? Science (2011) 332; 3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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