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ogene과 뻐꾸기

이일하l 2011-04-29l 조회수 280

Oncogene과 뻐꾸기                                        Grade E

오래 전 써놓은 글인데 유전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린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숙주 새로 하여금 제 자식을 대신 기르게 하는 얌체 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남의 둥지에서 부화된 뻐꾸기 새끼는 일반적으로 숙주 새의 알보다 먼저 부화한 뒤 숙주 새의 알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리더군요. 숙주 새의 parental care를 혼자 독차지하기 위함이지요.

뻐꾸기의 숙주가 되는 새에는 여러 종류가 있더군요. 또 그 현명함의 정도도 천차만별이구요. 어떤 숙주 새는 우리 눈에는 알의 모양이나 크기가 자기가 낳은 알과 전혀 다른데도 뻐꾸기 알을 구분해 내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더군요. 어떤 숙주는 그 모양새가 틀리면 금세 알아채서 둥지 밖으로 뻐꾸기 알을 밀어내는 지혜를 가지기도 하구요. 심지어 어떤 숙주는 자기가 낳은 알의 개수를 정확하게 세어두었다가 똑같은 모양의 알을 뻐꾸기가 슬쩍 실례하고 가면 그 알만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뻐꾸기와 숙주 새 간의 관계에도 공진화(coevolution)가 진행이 됩니다. 뻐꾸기는 가능한 숙주 새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숙주 새 알과 같은 모양의 알을 낳으려 하고, 숙주 새는 가능한 뻐꾸기 알을 구분해낼 수 있는 지혜를 갖추려하는 공진화 말이죠.

분자수준에서도 이런 뻐꾸기 얌체가 있습니다. 바로 암을 유발하는 virus이죠. Virus가 암을 유발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은 꽤 오래전에 알려졌고, 그 원인 유전자를 찾는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oncogene입니다. 따라서 oncogene이라는 용어에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onco- 는 tumor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virus가 가진 oncogene이 초파리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물에서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과학자들이 어리둥절했지요. 그러나 곧 이것이 뻐꾸기와 같이 얌체 짓을 하는 유전자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원래 oncogene(정확하게는 proto-oncogene)은 숙주세포에 들어있던 세포분열 조절 유전자입니다. 그런데 virus가 숙주세포의 염색체에 삽입되어 들어갔다 빠져나오는 도중에 proto-oncogene을 자신의 genome과 함께 가지고 나온 것이죠. 이때 proto-oncogene에 약간의 변형이 일어나 통제되지 않은 세포분열을 야기시키는 성질을 가지게 된 것이 oncogene입니다. 이게 virus에게 어떤 도움을 줬을 지는 이제 명확하죠. Virus의 목적은 보다 많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것입니다. Oncogene을 가지게 됨으로 해서 대량의 세포분열과 자신의 복제가 가능해지게 된 것이죠. 아마 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에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유전자 조각이 아닐까 생각이 되네요.

가끔 우스개소리 삼아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생물체의 목적은 보다 많은 자손을 남기는 것입니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배제해도 좋습니다.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의 마음이 불편하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생물체의 목적이 자손을 남기는데 있다는 것은 자연 다큐멘터리 한 두 편만 보면 금방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 지구상에 가장 훌륭하게 진화한 생물체가 virus입니다. Virus는 손도 대지 않고 시원스럽게 코를 풀어내는 신묘한 재주가 있으니까요.

2003년 1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