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세포의 제조, 생기론의 종말!

이일하l 2010-07-14l 조회수 774

인공세포의 제조, 생기론의 종말!                                        Grade B

2010년 5월은 인류문명사에서 획기적인 한 획이 그어진 달로 기억될 것이다. 생물학계의 악동 Craig Venter 박사가 인공세포를 창조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신의 영역이라 주장되어 왔던 바로 그 일이다.

일반생물학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이 가진 개념의 틀, ‘패러다임’을 깨트리기 위해 항상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인, 황 등의 간단한 무기물이 고도로 정교하게 조직된 복합체가 생명체이다. 인간을 이런 무기물로 완전히 분해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답은 무생물이고 이는 더 이상 생명성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무기물을 다시 원래의 형태로 정교하게 조직된 복합체로 연결하면 그 결과물은 인간일까, 아닐까? 살아있을까, 아니면 죽어 있을까? 얼핏 단순한 질문처럼 들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잘못된 답을 선택한다. 마치 아르헨티나와 한국이 대결한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베팅을 하는 순간에도 아르헨티나에 돈을 걸기를 주저하는 사람처럼...

이 질문에 정답을 내리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학생들뿐만 아니다. 실제로 내 주변의 많은 생물학과 교수들도, 모든 생명현상을 기계론(mechanism)적으로 설명하는데 너무나 익숙한 그 분들도 이 질문에 관한 한 잘못된 답에 베팅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잘못된 답을 선택하려는 이런 경향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바로 생기론(vitalism)의 역사와 전통이다. 생기론은 200 여년전 프랑스 철학자인 앙리-루이스 베르그송 (Henri-Louis Bergson)에 의해 하나의 신념체계로 굳어진 이론이다. 그는 생명은 절대 기계론적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모든 생명에는 무기물에 없는 생기력 (elan vital)이 존재한다고 주창하였다. 19세기 초반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유기화학자들도 생기론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따라서 여러 가지 화학물질을 합성할 수 있었음에도 생물질에 존재하는 복잡한 분자의 인위적 합성은 불가능한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이에 유기물과 무기물이라는 이분법적인 물질 분류 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믿음은 유기화학의 발달과 더불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서곡은 1828년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뵐러에 의한 요소의 합성이다. 그는 무기물들을 이용하여 동물의 오줌에서 발견되는 유기분자, 요소를 생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 그날 저녁 뵐러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친구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친구여! 나는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네!’. 그러나 이후 학계에서는 신랄한 비판이 쏟아지게 된다. 요소의 합성에 사용한 물질 중의 하나인 시안화이온이 실은 동물의 혈액에서 채취한 것이므로 생기론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해롤드 유리와 스탠리 밀러의 실험이 이어진다. 그들은 원시지구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간단한 무기물을 이용하여 전기방전 등의 방법으로 유기물이 합성됨을 보였다. 유기화학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학문으로 급진전한 것이다.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무기물의 정교한 조합으로 만들어진 복합체는 생명체일까, 아닐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보다 직접적으로 얻기 위한 실험을 Craig Venter 연구소의 연구원들 20 여명이 지난 십여년간 수행한 것이다. 그들은 Mycoplasma mycoides라는 미생물의 게놈(DNA로 이루어진 유전체의 총합)을 유기합성을 통해 제조한 뒤 이를 게놈을 제거해 더 이상 생물이랄 수 없는 Mycoplasma capricolum 몸체에다 이식한 뒤, 새로이 생성된 인공세포가 생명활동을 문제없이 수행하는 것을 관찰한 것이다. 물론 이 생명체는 M. capricolum이 아니라 M. mycoides로서 생존하고 있다. 이 실험에 대한 뉴스가 나오자 많은 철학자 및 과학자들은 새로이 만들어진 인공세포가 게놈만 만들어진 것이지 나머지 몸체는 모두 원래 존재하던 세포에서 온 것 아니냐고 딴죽을 건다.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 아닌가? 180년 전에 들어보았던 바로 그.....

생기론이 종지부를 찍었다고 단언코 말할 수 있다.                       2010년 7월 14일

뒤에 좀더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인공세포 제조 과정에 얽힌 에피소드를 밝힌다.

Reference
Synthetic genome brings new life to bacterium (2010) Science Vol.328; p958-959.
Synthetic genome resets biotech goals (2010) Nature Vol. 465; p406.
Life after the synthetic cell (2010) Nature Vol. 465; 422-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