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돌아온 탕아!

이일하l 2010-05-03l 조회수 129

2009년 신종플루, 돌아온 탕아!                                        Grade C

2009년 작년 한 해 신종플루의 창궐은 우리 인류에게 많은 교훈을 안겨 주었다. 전 세계 어디나 하루 이틀이면 갈 수 있는 글로벌 시대에 대유행병의 창궐을 막으려면 국가적으로는 어떤 대처가 필요한 지, 감염을 피하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어떤 보건 조치가 필요한 지 등 다양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덕분에 개인병원들이 감기 환자가 없어져서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호소할 정도로 보건에 관한 한 훌륭한 교훈을 남겼다고 하겠다. 생물학자들 역시 훌륭한 교훈을 얻었다. 신종플루의 창궐과 소멸은 진화메커니즘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교육 자료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사례가 된다.

신종플루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매개되는 질병이며 본질적으로 겨울철 독감과 같은 질병이다. -바이러스는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핵산과 이를 둘러싼 단백질 외투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우에 따라 단백질 외투 바깥에 다시 한 겹으로 인지질로 구성된 막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생물학 교재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 바이러스는 몸체를 구성하는 두 종류의 단백질, Hemaglutinin과 Neuraminidase의 첫 글자를 따서 바이러스의 이름을 결정한다. Hemaglutinin에는 모두 16종의 서로 다른 변이 단백질이 있고, neuraminidase에는 모두 아홉 종의 서로 다른 변이 단백질이 있다. 변이 단백질이란 본질적으로 같은 단백질인데 아미노산 서열상의 변화로 인해 조금씩 서로 다름을 의미한다. 비유하자면 같은 사람인데 유전적인 차이에 의해 서로 다르게 생겼다는 얘기이다. 이들 변이 단백질의 유형에 따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이름을 H1N1, H1N2, H3N4, H5N1, H9N3 등등으로 부르게 된다. 2009년 한 해 동안 우리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던 바이러스는 H1N1으로 정확히 91년 전 1918년에서 1919년까지 5천만명의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스페인 독감의 원인 바이러스이기도 하다.

신종플루와 관계된 몇 가지 보건학적인 사실을 살펴보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의 신종플루는 육체적으로 병약할 것으로 생각되는 노인들은 거의 걸리지 않았고 열 살이내의 어린이들이 집중적으로 걸렸었다. 또한 이 대유행병은 돼지 인플루엔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왜 그랬을까?

최근 연구 논문에 의하면 인플루엔자 hemaglutinin 단백질의 3차 구조를 확인한 결과 91년전 스페인 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의 원인이 된 인플루엔자의 hemaglutinin 단백질 간에는 놀라울 정도의 구조적 유사성을 보인다. 스페인 독감의 인플루엔자에 대한 항체를 주사한 생쥐는 신종플루에 대해 면역성을 보이며 반대로 신종플루에 대한 항체를 주사한 생쥐는 스페인 독감 인플루엔자에 대해 면역성을 가진다. 이 실험 또한 구조적 유사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어떻게 90년 전의 인플루엔자와 지금의 인플루엔자가 같아졌을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생체 내에 침투해 들어가기 위해서 hemaglutinin 단백질을 이용한다. 즉 hemaglutinin 단백질을 닻으로 이용하여 사람 세포막 위에 정박을 하고 결국 침투해 들어가게 된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인플루엔자가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hemaglutinin 단백질의 3차 구조를 인식하여 결합하는 항체를 생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어막은 곧 붕괴된다. 왜냐하면 인플루엔자가 인간의 항체가 자신의 형태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빠르게 진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적 변화의 중심에 hemaglutinin이 있다. Hemaglutinin은 매우 빠르게 진화하는 단백질로 덕분에 우리 인간들이 매년 가을만 되면 신종플루 백신 주사를 다시 맞는 번거러움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진화는, 혹은 유전적 변이는 무작위로 진행되는 것이어서 어떤 해는 백신 주사가 잘 듣기도 하고 어떤 해는 전혀 듣지 않기도 한다. WHO에서 인플루엔자의 변이를 정확히 잘 예측하면 잘 듣는 것이고 잘못 예측하면 안하니 만 못한 꼴이 된다. 아직 예측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진화의 불예측성을 실감하게 한다.

이제 스페인 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 간의 관계를 알아보자. 현재 겨울 독감은 모두 스페인 독감의 자손들인 셈이다. 스페인 독감이 창궐했다가 소멸되었다는 것은 우리 인간 개체군 집단 내에 1918년 당시 대유행했던 인플루엔자에 대한 항체가 잘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당시의 스페인 독감에 대한 면역은 아주 잘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플루엔자는 변이를 통해 인간의 면역 체제를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Hemaglutinin 단백질에 당사슬 (sugar chain, glycosylation)을 연결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인간의 항체가 더 이상 hemaglutinin 단백질을 인식하지 못하게 위장을 해버린 것이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은 나뭇가지를 이용해 자신을 위장해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을 연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인간의 항체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간에는 이와 같은 arms race가 무한히 반복된다. 당사슬로 위장한 hemaglutinin은 다시 이를 인식하는 항체의 개발을 통해 무력화되고, 그러면 바이러스는 또 다시 다른 부위에 당사슬을 갖다 붙이는 식으로 위장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계속 되풀이 하다보면 더 이상 당사슬을 갖다 붙일 마땅한 장소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어떡하나?

어떡하면 될까? 인플루엔자는 다른 종류의 hemaglutinin 단백질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독감은 조만간 H1N1이 아닌 다른 종류, 즉 H5나 H9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인체에 잘 적응된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H1N1을 다른 방법으로 변형시켜 또 써 먹을 것을 고려하지 않을까?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대머리 H1N1이다. 즉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당시에 만들어졌던 당사슬이 전혀없는 H1N1으로 진화한 것이 2009년의 신종플루이다. 기막힌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핵산의 염기서열은 꾸준히 진화해 왔기 때문에 1918년 스페인 독감의 인플루엔자와 비교해 2009년의 신종플루는 염기서열이 상당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백질의 3차 구조는 기가 막히게 비슷해진 것이다. 덕분에 과거 인플루엔자에 대한 항체를 가진 노인들은 신종플루에 대한 면역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돼지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비교적 생활사가 짧은 돼지나 닭 등의 가축에도 유사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있다. 숙주 특이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전염이 되지 않지만 종간의 경계를 넘는 일이 흔치 않게 일어나기도 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생활사가 짧은 사육 돼지에서는 H1N1의 진화 속도가 느려 스페인 독감 대유행 당시에 있었던 대머리 H1N1 형태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것이 사람에게 넘어오는 순간 인간의 면역 체계가 듣지않는 대유행 상황을 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돼지를 진화적 온장고(warm freezer)라고 부르는 표현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이제 우리는 왜 신종플루가 노인들에게는 감염이 잘 되지 않았는지, 왜 하필이면 돼지에서 넘어왔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젠 인플루엔자의 진화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으며, 이러한 대유행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은 셈이다.

Reference
What's old is new: 1918 virus matches 2009 H1N1 strain (2010) Science Vol.327; p1563-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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