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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씨앗' 출간

2020-07-31l 조회 6456


[옮긴이의 말]

이 책은 한 환경운동가가 자신이 열정을 쏟아 수행해 온 환경운동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자 진리를 추구하는 열린 지식체계로서 과학이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주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과격한 환경운동가로서 마크 라이너스는 GMO(유전자변형생물) 반대운동을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자신이 수행하고 있던 GMO 반대운동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여기에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라이너스 자신의 환경운동과 저술이 전적으로 과학적 사실에 근거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주장은 과학적 공통의견을 따르면서 GMO에 대해서는 과학적 공통의견을 거부한다? 아무리 이념에 충실한 운동가이지만 진실에 대한 양심을 라이너스는 저버리지 못한다.

GMO에 대한 잠재적인 위험성은 운동가들보다 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먼저 제기했고 또한 과학자들은 그 위험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로 환경과 건강에 대한 GMO의 위험성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유익함이 밝혀짐에 따라 과학계는 GMO 위험성에 대한 초기의 경고를 해제하게 되었다. 최근까지 세계의 거의 모든 주류 과학계에서는 방대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GMO가 위험하지 않다는 결론을 보고해 왔다. 그러나 주요 환경단체들은 과학계 소수의 의견을 근거로 여전히 GMO의 위험성을 주장하고 GMO를 반대하고 있다. GMO 반대의 결정적 증거로 이용되어 왔고 아직도 인용되고 있는 연구결과 중에는 데이터와 통계 조작이 의심되는 것들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GMO 반대운동 단체들은 지구온난화 부정론자들(이들은 과학계 비주류 의견에 의존함)을 비난할 때 주류 과학계의 의견을 근거로 삼아왔다. 여기서 라이너스는 과학에 근거한 진리의 일관성을 선택했다.

정평 있는 세계 대다수의 과학계가 GMO의 안전성을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GMO에 대해 여전히 의심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GMO의 개발과 재배를 불허하고 있는 걸까? GMO에 관해 확인되지 않은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GMO 반대운동 단체들의 성공적인 운동과 그에 따른 대중의 막연한 공포심이 함께 작용한 원인이 크다.

운동가들이 GMO에 대해 갖는 거부감의 근원은 과학적 근거 여부를 떠나 훨씬 복잡해 보인다. GMO가 갖는 정치, 경제, 사회적 요인들, 특히 GMO 개발과 생산을 중심으로 기업의 독점적 지위가 만들어지는 데 대해 많은 좌파계열의 운동가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한 많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GMO 반대운동단체들은 기아와 환경보존을 위한 공익과 인도적인 GMO 사용조차도 격렬히 반대한다. 여기에는, 일관되게 GMO를 반대하는 진영논리가 반영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여 GM(유전공학) 기술로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변형시킨다는 순수한 (생명)윤리적, 직관적 반감이 개입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는 농업을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인간에 유리한 형질들만 인위적으로 선별해 왔고, GMO 반대운동권에서도 허용하고 있는 돌연변이 유도와 교배를 통한 전통 육종법은 GM 기술보다 훨씬 급격하고 방대한 유전적 변형을 초래한다. 아무 거부감없이 허용되는 전통 육종보다 한 개 또는 몇 개의 유전자만을 도입 또는 편집하는 GM 기술이 위험해야 할 과학적 이유는 찾기 힘들다.

GMO 거부와 관련해서 가장 비과학적인 주장이 ‘GMO를 먹으면 암에 걸리고, 자폐증이 생기고, 기형을 유발하고…’ 등과 같은 질병 관련 주장들이다. GMO는 전통 육종과 마찬가지로 한 생물체가 갖고 있는 유전자(DNA)의 서열이 바뀌거나 도입되어 새로운 특성을 갖게 된 생물이다. 하지만 생물의 진화과정을 들여다보면, 현존하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종간의 유전자 도입 과정을 거쳐 지금의 종을 형성해 왔다. 유전자변형 GM 기술은 우리 인간이 창조한 기술이 아니라 자연에 원래 존재했던 현상이다. 자연에 원래 존재했던 물질과 반응들을 이용해서 새로운 도구와 물질들을 만들어내는 물리, 화학적 기술과 생물학적 GM 기술에는 근본적 차이가 없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이래 우리가 골라서 재배해온, 그리고 근대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돌연변이 유도와 육종방법으로 유전자를 변형해온 채소와 곡물과 과일들이 바로 전지구적으로 인류가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먹거리들이다. 이러한전통적 유전자변형먹거리들이 암, 기형, 자폐증과 같은 병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GMO와 마찬가지로자연스럽기때문이다. , 전통 육종 품종이나 GMO나 모두 자연에서 일어나는 유전자변형 과정을 인간이 재현한 생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GMO 반대운동단체들은 GMO가 질병을 일으키는 특별한 악마적 요소를별도로가진 것처럼 표현하고 있고, 이것은 건강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 대중들의 공포심을 유발시키고 있다.

GMO에 대한 운동가들의 이념적인 거부감과 대중의 직관적 공포심을 떠나, 과학자인 역자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GMO의 위험성은통제 불가능한 괴물 생물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능성과 위험성은 애초에 GM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 자신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제기되었었다. 인간 삶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세균,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식물과 동물들의 출현. 이런괴물들의 출현을 우려해서 GM 기술을 창시한 초기의 과학자들은 스스로 GM 기술의 사용과 확산에 족쇄를 채웠었고, 당시 주류 과학계 역시 스스로 그 위험성을 경고했었다. 하지만 GMO가 만들어지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지켜보고 실험해본 결과 이 괴물의 출현은 허상인 걸로 드러났다. 인류가 감지할 만한 생태계의 교란, 생명위협과 연관 지을 GMO는 출현하지 않았다. 물론 이론적으로 인간의 생존과 현재의 윤리체계를 급격히 위협하는 GMO가 만들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생물학 무기나 맞춤형 인간과 같은 것들이 그런 예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유용하게 써오고 있는 수많은 물리학적, 화학적 지식체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우려이다. 인류가 현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물리, 화학적 지식들은 지구상에서 인류를 송두리째 제거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 데 이용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과학지식의 비극적 오용을 통제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인류의 생존과 편리를 위해 성공적으로 사용해왔다.

과학적 지식과 거기서 파생한 기술은 인간의 사용에 따라 필연적으로 양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이 인류에게 이롭게 사용될 수 있도록 우리는 그 결과물들을 과학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지만, 근거 없이 괴물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유용한 기술을 폐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과학적 지식체계의 특징은 진실에 대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누군가 새로운 합리적 증거를 제시하면 옛 이론을 폐기하고 새 이론을 수용한다는 점이다. 종교나 이념에 따른 신념처럼 고정된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과학은 자연에서 일어나는실재의현상을 대상으로 하고 하나의 과학적 이론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과학적 탐구 결과를 무엇보다 신뢰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의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실에 가까운 행동을 취할 때 자연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고, 과학은 우리를 진실과 자연에 가까워지게 해주는 다리가 된다. 그리고 기술은 이러한 이성적 지식체계인 과학이 낳은 씨앗이다. 그것이 인류를 불행이 아닌 행복과 자연과의 조화로 이끌도록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관악산 기슭에서

조형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