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논단] [객원논설위원칼럼] 김상종교수 / 인터넷 재갈을 뿌리치자

2009-01-22l 조회수 4237

인터넷 재갈을 뿌리치자 / 김상종교수 [한겨례신문 2009. 1. 19 기사]본 글은 개인적인 견해, 주장입니다. 공익을 해할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정부에 대한 명예훼손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검찰이 미네르바라는 박아무개씨를 허위사실 유포죄로 구속한 이후에 신변 위협을 느낀 누리꾼들이 글 말미에 붙이는 부적이다. 이는 미네르바 구속 이후 인터넷에 새로 나타난 풍속도다.부적이 등장하고 인터넷 논객들이 대거 떠났다. 누리꾼들을 겁주는 게 검찰의 의도였다면 충분히 성공했다. 대신 검찰은 미네르바의 신분을 밝혔던 국가 정보기관과 동아일보사를 허위 정보를 유포한 무능한 기관으로 만들었다. 동아일보사가 검찰의 미네르바는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고 맞받아친 것은 언론으로서 피할 수 없었다. 이제 미네르바 정체의 진실이 무엇이든, 사회적·정치적·법률적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미네르바를 구속했던 검찰은 스스로 판 함정에 제가 빠진 꼴이 됐다. 왜 그랬을까?재벌과 보수세력의 장기 집권을 위한 기반 구축에 너무 서둘렀기 때문은 아닐까. 이 정권은 최악의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방송 장악에 총력을 기울였다. 국민과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실패하자, 이번에는 국회 장악을 위한 국회폭력방지 특별법, 국회질서유지법 제정 등을 들고 나왔다. 방송사 사장을 억지로 바꾸고, 반대하는 사원에게는 해고 등 중징계를 남발했다. 게다가 인사쇄신 여론을 무시하고 4대 권력기관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이 정권의 최우선 목표는 국민 화합과 경제난 해결이 아니었다.다른 한편에서는 재벌과 건설족의 배를 채워주고 덩치를 불리는 데 집중해 왔다. 그 결과 재벌은 은행이라는 새로운 금고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은행과 방송의 경쟁력 강화라는 허위 사실에 가까운 구실을 유포하며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그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는 족벌언론과 재벌의 핑계일 뿐이다. 각종 부동산 규제 철폐, 개발 사업 허가와 마스터플랜이 나오기도 전에 착공부터 하는 4대강 정비 같은 토목사업 등은 건설족을 위한 선물이다. 심지어 재벌기업의 빌딩 건설을 위해서는 국가안보 문제가 야기돼도 주저하지 않고 밀어붙인다. 이러한 조처가 재벌기업의 덩치만 키워주고 우리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켜줄 뿐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이러한 성과는 곧 재벌과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에 일조할 것이다.그러면 이런 구도를 실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시민의 계몽이다. 피해를 보는 시민들이 정권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 위험성은 사이버 공간에서 시민지성 ‘고수’ 논객들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더욱 커진다. 국내외적 논란과 비난을 무릅쓰고 미네르바 구속, 사이버모욕죄 도입이 필요했던 이유다. 이런 조처의 시대착오성은 이명박 정권이 사이버 공간에서 정보 교류와 시민의 계몽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좌다.방송과 은행이 재벌들에 한번 넘어가면 다시 되돌리기는 어렵다. 아무런 토의와 검증 없이 막개발로 한번 훼손된 우리의 국토 역시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생명과학부 교수인 필자가 환경과 과학만 고민할 수 없는 이유다.미네르바는 ‘힘없고 배고픈 서민들’에게 자기 스스로 생존법을 찾도록 강조했다. 미네르바가 추천한 도서목록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서민들이 경제 공부를 시작했다. 시민들이 세상에 새로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정권이 두려워하는 일은 시작됐다. 비록 미네르바의 구속과 사이버 모욕죄 공포가 인터넷을 옥죄고 있지만, 그럴수록 시민 사이의 정보 교류와 토론은 활발해져야 한다. 정보와 공론의 샘이 마르는 순간, 이 정권의 음모는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